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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

2008 중국 베이징(자금성 : 紫禁城)

by rh22ys 2014. 7. 30.







중국의 중심지인 천안문광장 가운데에는 천안문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경복궁에 해당하는 고궁 자금성이 나옵니다. 


자금성은 명나라의 영토를 넓힌 영락제때 지어졌다고 합니다. 원래 수도였던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지었다고 합니다. 명나라 시대에도 북방의 유목민족(인종차별적 냄새가 나는 오랑캐라는 표현은 삼가하려고 합니다)의 침략이 잦아서 적극적 방어를 위해 일부러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자금성은 만리장성과 더불어 중국의 빅스케일 구조물 중 하나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궁전중에 가장 큽니다. 대륙국가는 스케일이 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지요. 넓이는 경복궁의 곱절이며 9999개의 방이 있다는 얘기도 있지요(실제로는 8천개 정도 된다고 하네요) 이 궁전을 짓기 위해서 무려 100만명 이상의 인부들이 동원되었고 1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자금성은 우리나라의 고궁처럼 궁전의 기능도 있지만 방어에 유리한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일본의 성처럼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천안문을 지나서 수백미터는 더 걸어들어가야 자금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곳이 실제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입니다. 가운데의 문은 황제만 출입했었고 지금도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된다고 하네요. 







건물은 우리나라의 고궁처럼 단청을 사용했으며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상이 많은편입니다.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나봅니다. 




우리나라의 경복궁도 거대한 궁전이지만 자금성과 비교할바가 못됩니다. 경복궁의 경우 제후국의 스케일에 맞춰 지어진 형태인데요. 중심건물인 근정전까지 3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 이렇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명청시대 중국은 제국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스케일로 지어졌습니다. 중심건물인 태화전까지 무려 5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스케일 있게 지은건 황제의 사치도 있지만 외교의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신들이 자금성에 왔을때 이 엄청난 궁전의 규모로 기선제압시켰다고 하네요.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 사대주의가 되는것도 이 중국의 엄청난 스케일에 놀라서 그랬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궁궐의 해태상과 비슷한 사자상입니다. 이전포스트에서도 설명했지만 중국에서 사자상은 황족을 상징합니다. 일반 주택에서도 황족이 아니면 감히 사자상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하는 자금성의 중심건물 태화전입니다. 각종행사와 조례가 있었던 건물이지요. 경복궁과는 달리 품계석이 없습니다. 대제국이라 신하도 많았는지 건물앞 광장도 엄청 넓습니다. 



황제의 궁전답게 기단도 엄청납니다. 





황제가 앉았던 자리입니다. 화려함이 남다릅니다.



자금성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궁 안에 나무가 없습니다. 자객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궁 내부는 굉장히 건조해서 화재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위 사진의 거대한 용기들은 화재시 방화수로 사용할 물을 저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어서 건조해지는 궁 내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금성의 바닥은 벽돌로 만들어졌는데요. 걸을때마다 소리가 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의 영주가 거주하는 집과 비슷한데요. 자객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중국의 황제도 엄청난 살해위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중국의 애로영화를 보면 황제가 궁녀와 관계를 가질때 벌거벗은 궁녀를 이불로 칭칭 감아서 데리고 오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무기를 소지하기 못하게 하는게 목적이었다고 하네요.



원래 이 그릇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는데 1900년에 8개국 연합군이 자금성을 침략했을때 이 용기를 가져가려다가 너무 무거워서 못가져가고 외부의 금만 긁어갔다고 하네요;;;;



성 내부는 행정기관이 있었던 외조와 황족의 생활공간이었던 내정으로 나뉩니다. 태화전 뒷쪽으로 가면 황제의 침전 등 다양한 황족의 생활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궁 내부에는 위처럼 용이 조각된 답도가 있는데요. 오직 황제만이 가마로 이 길을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위 답도는 운룡대석조로 하나의 돌로 만든거라고 합니다;;;; 워낙 크기가 거대해서 겨울에 길거리에 빙판을 만들어서 이동했다고 하네요.




자금성 내부는 거대하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다 빅스케일입니다. 건물의 크기도 기단의 크기도 정말 엄청납니다. 궁전 크기가 워낙 커서 돌아보는데만 몇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충분한 체력을 비축하고 가시는게 좋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자금성을 한바퀴 돌고 아픈 발을 풀 수 있도록 발맛사지로 연결시킨다고 하네요.




제가 자금성을 방문했을때는 천안문, 오문, 태화전, 황제의 침전, 후원 등의 직진형 코스로 이동했는데요. 자금성이 워낙 크다 보니 경복궁을 빙빙 둘러보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위 사진의 문은 건청문인데요. 문너머에는 황족의 생활공간이 있습니다. 태화전까지는 정사를 보던 공간이라 큰 건물이 많지만 건청문을 지나서는 작은 건물들도 나옵니다. (그래도 조선의 경복궁과 비교도 안될정도로 큰편입니다;;;;;)



이곳이 황제의 침실이었던 건청궁입니다.



조선의 경복궁을 보면 자연과 조화된 아기자기한 모습인데요. 자금성은 황제의 궁전이라 거대해서 그런지 인공미가 강한편입니다. 그리 크지 않아도 되는 침전도 스케일이 남다릅니다.




중국은 관직 등급에 따라 다른 색깔의 관복을 입게했는데요. 황금을 상징하는 노란색은 황제만이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자금성의 지붕은 모두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제후국에 불과했던 조선의 왕은 붉은색 옷을 입을수밖에 없었죠. 얼마전 종영했던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고려의 왕은 노란색 옷을 입고있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붉은옷으로 바뀌는게 나오죠. 











붉은색과 초록색이 많은 단청으로 장식하는 한국의 궁전과는 달리 파란색과 황금색의 단청이 많았습니다. 





황족의 생활공간을 보면 화려함이 남다른 황제의 자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황후의 침전이었던 곤녕궁은 유독 붉었습니다. 다산을 위해서 저렇게 붉은색을 장식한걸까요?




자금성 뒷쪽에는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데요. 언덕위에도 궁전의 일부가 남았습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점령할때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저 언덕에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곤녕궁 뒤로는 후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자연을 최대한 살린 경복궁이나 창경궁과는 달리 자금성의 후원은 독특하고 거대한 나무와 돌들이 많아서 인공미가 굉장히 강한편입니다.



중국 전역에 있던 독특한 나무들을 옮겨와서 심었다고 합니다. 




퇴리산과 정자입니다. 중국사람들은 괴석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황제의 궁전답게 굉장히 독특하고 거대한 괴석이 있었습니다.



이 문이 자긍성의 뒷문 신무문입니다. 



성은 방어를 위해서 외성과 내성이 있고 중간에 해자가 있습니다. 분열과 통일의 역사를 가진 중국이라 그런지 황제들은 신변의 위협을 많이 느꼈나 봅니다. 



이 성들을 지나면 십중팔구는 발맛사지 코스로 이어집니다. 자금성이 너무 커서 발이 아파서지요. 발이 부은 상태에서 받는 맛사지는 정말 좋습니다. 중국만큼 맛사지를 잘하면서 저렴한 곳도 없으니 꼭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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